Ⅰ 일본 정원의 발상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 예술의 하나인 일본정원의 역사는 문헌에 남아 있는 기록을 살펴보면 수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 정원의 시작은 돌을 고리 모양으로 둥글게 늘어놓기도 하고 세우기도 한 형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시구미(石組)는 제례에서 사용한 설치물로 보이며 이것이 자연숭배 사상으로 승화되어 현존하는 정원의 이시구미 형태로 변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한다는 것이 일본정원의 기본 발상이다. 이러한 변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대륙과 한반도로부터 유입된 고도의 문화, 종교, 철학 등이다. 그러한 사상을 배경 삼아 일본적인 것을 가미하여 일본 독자적인 정원으로 승화 발전시킨 것이다.
일본정원의 주요 구성 요소로는 연못, 섬, 거석(巨石), 소나무를 들 수 있다. 즉. 연못이 있고 연못 안에 섬이 있으며 섬에는 거석과 소나무가 있다. 여기에 현대에 이르러서는 밤의 정원을 밝혀 주는 석등롱(石燈籠), 사람들이 정원을 산책할 때 편리하도록 돌을 늘어놓은 데서 시작되었으나 실용적인 면과 함께 경관과 어우러지는 멋을 추구한 정원의 통로인 노베단(廷段)등이 곁들여져 있다.

Ⅱ 일본 정원의 기원이 되는 신석(神石)
1. 돌과 바위
교토에는 가미가모신사(上賀茂神社)라 불리는 신사가 있다. 이 신사의 맨 북쪽에는 가미야마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의 정상에는 크고 평평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 신이 강림해서 가미야마(神山)와 신사 사이에 있는 한 단 낟은 마루야마(丸山)라는 산으로 건너 간 다음에, 계단을 내려오듯이 신사의 본전(本殿)으로 왔다는 것이다. 신이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내려올 때 최초의 발판이 된 것이 고야마라는 산의 정상에 있는 크고 평평한 바위라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바위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신사는 일본 전역에 많이 있다. 그렇게 신앙의 대상이 된 바위를 반좌(磐座)라고 부른다. 이처럼 옛부터 산의 돌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이와 같이 산의 바위나 수목, 혹은 산 그 자체에 신의 영혼이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유형의 신사를 "수직강림형"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곧바로 지상에 내려 왔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다.
신사안에는 여러 개의 큰돌을 고정시켜 만들어진 반좌가 있다. 이것이 이시구미의 탄생이다. 일본의 정원에 꾸며지는 이시구미는 여기에서 발전되어 온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정원의 주역은 소나무나 등롱(燈籠)이 아니라 자연석의 배치이다. 돌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며 "돌에서 신을 본다"라는 것이 일본정원의 저변에 흐르는 사상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2.이시구미
일본 정원에 있어서의 돌의 배치를 이시구미라고 하는데 일본 최고의 정원서인 작정기(作庭記)에 쓰여진 돌의 배치법을 지금까지 답습하고 있다. 일본정원에 있어서의 이시구미는 돌 하나 하나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집단으로 조화된 돌의 형태에서 그 시대의 종교, 철학, 인간의 이상론 등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시구미란 복수의 돌을 조합해서 미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며 기본적으로 두 개의 돌을 조합하는 형태 이외에는 홀수가 약속으로 되어 있다.

Ⅲ 일본 정원에 담긴 사상
1. 신도사상(神道思想)
신도사상이란 대륙에서 건너간 불법(佛法)에 대응하여 일본에 본시부터 있었던 사상, 의례(儀禮)등 일본 민족 사이에서 발생한 고유한 민족 신앙을 지칭한다. 신도에는 특별한 교전(敎典)은 없으나 일본열도의 기후와 풍토 속에서 농경 생활을 영위해 오는 동안 특색 있는 성격을 형성해 왔다. 전국의 신사를 중심으로 씨족신과 그 고장의 수호신에 대한 제사의례를 행하고 있다. 이러한 신도의 사상을 표현하는 정원에는 연못 정원과 가레산스이(枯山水)정원이 있다.
⑴연못정원
일본정원에서 연못은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물을 쓰지 않는 가레산스이 양식의 정원도 일단 물을 상상하여 만든다. 상고 시대 이후 정원의 연못은 바다를 표현하고 있으며 정원의 발상은 신과 함께 있다. 신사에 만들어진 연못은 신지(神池)이며 연못 안의 섬에 신을 모신다. 이리하여 연못 안에 섬을 만들고 섬에는 골라 놓은 돌을 늘어놓는다. 이것이 연못을 파고 섬을 만드는 일본정원 최초의 기본형이 된 것이다.
★기타큐슈 후쿠오카현에 있는 무나카타신사에는 고대의 제사 형식이 남아 있다. 무나카타신사의 북서쪽인 현해탄에는 신사로부터 가까운 바다에 오시마(大島)가 있고, 더 떨어진 곳에 오키노시마(沖島)가 있는데 그 섬들을 일직선으로 이어 가면 대마도 옆을 지나 한반도의 부산에 이른다. 무나카타신사의 정원에는 현해탄을 상징하는 연못이 있고 연못 안에는 이들 오시마와 오키노시마를 만들어 두었으며, 오키노시마에는 큰바위를 옮겨다 두어 이를 반좌로 삼아 제사를 행한다. 고대에 신은 바다 저편에서 건너 왔다고 믿고 신을 맞이하기 위한 의식이 이런 형식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무타카타신사에서 모시는 신은 제 여신이며 오쿠쓰미야신. 베쓰미야신, 나카쓰미야신이다. 이와 같이 바다 저편에서 오는 신을 맞이한다는 유형의 신사를 "수평도래형" 구조를 지닌 신사라고 한다. 무나카타신사는 한반도와 키니큐슈를 연결하는 바다 길, 현해탄 그 자체인 것이다. 이리하여 현해탄을 모델로 해서 연못을 만들고, 연못 안에 섬을 만들고 신을 모신다.

⑵가레산스이 정원
헤이안 시대에 작성된 작정기에 이미 가레산스이정원에 관한 기술이 있다. "물이 없는 곳에 돌을 세우는 것을 가레산스이(枯山水)라고 한다"라고 쓰여져 있다. 신은 하늘에서 산꼭대기의 바위에 강림한다고 생각하여, 산꼭대기의 거석은 신의 발판 즉 반좌라고 했다. 산꼭대기의 거석군(巨石群)은 신의 거처로 여겼고 이곳을 반경(磐境)이라고 하였는데, 일본인들의 머리 속에 새겨진 신에 대한 상징성을 표현한 개념이다.
신이 현세에 내려와 머문다는 반경에서 인간 자신도 신이 되어 눈 아래로 펼쳐진 세상을 내려다보고자 했다. 산을 굽어볼 때 발 아래로 늘어서 있는 돌들은 각양각색이며 이는 태고적부터 있었고 영원히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는 돌들이다. 이런 경치를 항상 볼 수 있는 공간에 재현하고 싶은 생각에서, 물이 없는 공간에 마치 물이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여러 모양과 크기의 돌을 배치하여 풍경을 꾸며낸 정원이 가래산스이 정원이라 했다.
결국 산에서 내려다 본 세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 물 없는 풍경 즉 가레산스이 정원이다. 연못 정원을 물 없이 표현하는 것에서 출발된 가레산스이 정원은 점점 불필요한 요소를 떨어내고 간소화하여 궁극에는 돌뿐인 정원이 되기에 이르렀다.

2.불교사상(정토정원)
불교의 도래와 함께 불교 사상의 표현으로 정토식(淨土式)이라고 불리는 정원에 세상에 나온 것은 헤이안 시대 후기였다.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읊조리기만 하면 죽어서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단순 명쾌한 불교의 가르침을 정토교라 한다. 귀족들을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 사후를 맞이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 현세에 정토를 만들고 죽음의 예행 연습을 행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불상을 조각하고, 침전을 짓고, 연못을 팠다. 이것이 정토정원의 시작이다.
★정토정원의패턴
1.정원의 서쪽에 아미타 삼존불(三尊佛)을 모시는 아미타 불당을 세웠다.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보살(觀音菩薩)과 세지보살(勢至菩薩)이 양옆에 앉아 있는 것을 삼존이라고 한다.
2.그 앞쪽인 동쪽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 안에는 섬을 만든다. 연못 안의 섬은 하나로 한하지 않고, 두 개인 경우와 세 개인 경우가 있다. 이런 연못을 칠보연못이라고 한다.
3.연못 안의 섬에는 동서 직선으로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고, 섬의 서쪽은 활처럼 휘어진 모양의 다리를 설치하고, 동쪽은 평평한 모양의 다리를 설치하는 식으로 대체로 양식이 정해져 있다. 서쪽의 아미타불당은 극락이고 동쪽의 물가는 사바세계 즉 속세를 뜻했다. 연못에는 서방정토(西方淨土)를 나타내기 위해 연꽃울 심었다. 옛날에 정원의 연못에는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연꽃이 심어져 있었다.
4.극락정토 궁전의 상징인 뵤도인(平等院)은 화려하고 정밀한 생으로 채색되었으며 아미타삼존불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이상이 정토정원의 기본적 배치 즉 지와리(地割)이다.

3.도교사상(신선정원)
일본의 정원 양식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중국에서 전래된 신선사상(神仙思想)의 영향이 독특한 구성요소로 작용했다. 신선사상을 도교로 일컬어지며 신선을 숭상하며 신앙한다. 신의내방을 수평도래형으로 인식하여 만드는 신의 연못에 관해서는 이미 설명했는데. 이것이 그대로 정원의 연못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불로불사의 신선이 사는 섬을 연못의 구성요소로 설치하는 양식을 신선사상의 정원이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에 신선사상이 도래되어 사카라와 상왕(白川上皇)이 교토의 후시미에 별궁을 만들었을 때. 큰 연못을 파고, 봉래산과 같은 신선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삼신도(三神島)에 관한 사상을 그 후에도 지속되어 가쓰라이궁등에도 삼신도를 만들었다.
헤이안 시대에 만든 연못 안에는 섬을 설치했는데 신도의 영향과 함께 신선도를 묘사할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섬이 하나인 경우는 봉래도 만으로 세 개의 섬을 상징한다. 봉래, 방장 두 개의 섬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으며 세 섬 모두 있는 경우도 있다.
이들 섬에는 반드시 소나무를 심는 것이 양식화 되었다. 지금도 삼신도에는 노송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봉래도 학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일컬어지고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아마 학과 거북은 장수한다고 믿어졌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봉래와 방장 두 섬은 학과 거북으로 상징되어 "학도"와 "귀도"로 변화했다.
이렇게 도교의 신선사상이 정토신앙과 일본 고래의 신도와 융합하여 정원의 형식이 완성되었다.

4.음양사상
긴카쿠시의 정원에는 흰모래를 원추 모양으로 쌓아 올린 것이 있다. 향월대라고 하는 것이다. 그 바로 옆에는 흰모래를 낮게 쌓아 올려 평평하게 선을 그리고 있는데 이를 은사탄이라 한다. 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었는지 명확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단지 연못을 파내는 작업을 할 때에 나온 모래를 연못 옆에 쌓아 두었더니 저렇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쨌든 이 은사탄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음"과"양"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사상 가운데 현상의 모든 것을 음과 양으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음양사상이다. 음양은 상대적인 것으로써 사물의 겉과 속과 같은 것으로 같은 것일지라도, 음으로 파악되기도 하고 양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모든 상대적인 것에는 음양이 있다. 돌을 하나로 세운다면 또 하나는 눕히고, 연못을 판다면 이와 대조가 되는 산을 쌓는다. 음과 양의 사상은 일본정원의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Ⅳ 현대의 일본정원
메이지 시대부터 급격히 유입된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정원의 시도는 시행착오를 거듭한 결과 일본 고유의 정원이라고 할수 있는 정원이 근대 이후에는 제작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서양식 정원은 조경의 색채가 강하여 일본정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돌의 배치가 지니는 추상적인 표현방법과 합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래의 수법을 살리면서도 결코 옛것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구성과 색채 등에서 현대적 감각을 대답하게 받아들인 참신한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Ⅴ 일본정원의 구조와 일본인의 미의식
평소 일본인들은 종교를 의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종교와 관계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습관적인 관계일 뿐 서양인들의 종교적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단편적 예로 일본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신주(神主)로부터 축복의 기도를 받는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절의 스님에게 부탁해 독경을 외우게 한다. 또한 결혼식만은 기독교식으로 올리고 그리스도에게 죽을 때까지 희로애락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한다. 어찌 보면 제 멋대로 종교를 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모순을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다. 여러 종교를 동시에 자기 좋을 대로 드나들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동거 상태를 유지해 왔다. 일본의 정원도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한 정원 안에 불교적인 사상이 존재하는가 하면 신도사상도 존재한다. 도교적인 요소가 존재하는가 하면 음양사상도 존재한다. 게다가 정원 안에 꾸며진 돌 하나에 불교와 도교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 것도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이 일본정원의 특징이다.
정원에 산을 만들고 돌을 배치하여 거기에서 산을 본다. 또한 정원에 연못을 파고 연못 안에 섬을 만들어 돌을 배치하고는 거기에서도 신을 본다. 복수의 종교사상이 잘 조화되고 통일되어 멋진 정원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성격구조와 일본정원의 구조는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