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좋고 물 맑기로 유명한 강원도 양구군 현리.
겨울이면 눈이 유달리 많이 내리는 고장이지만, 상병시절 불침법을 섰던 그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들 깊이 잠든 새벽,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고참 병장이 초소 근무를 마치고 들어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패치카 앞에서 몸을 녹였다. 얼마 후 모포속으로 들어간 그 병장은 이내 한권의 책을 펼치더니 그 책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무슨 책인지 궁금하여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병장은,
"제대도 얼마 남지 않고 해서 일본어 공부라도 해 두려고....."
하며 책을 보여 주었다. 일본어 기초문법 책이었다.
순간 군에 입대하기 전에 숙부가 내게 해주었던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올랐다.
"3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에 틈나는 대로 일본어를 공부해라"
그렇다! 이 길이 오직 내가 갈길이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는 도중, 갖가지 생각이 착잡하게 떠올랐다. 군에 입대할 때의 기분이 이러했던가!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니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지만, 막상 이곳이 일본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두려움이 앞섰다. 목이 타서 음료수를 마시고 싶었으나 어디서 사야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학생으로 보이는 일본인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기에 다가가서 어설픈 일본어와 손짓 발짓으로 어디서 사면 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들은 이상한 표정으로 흘끗 쳐다만 보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나의 일본어 수준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멀리 자동판매기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마시고 싶어하던 콜라도 있었다. 순간 조금 전까지 두렵게만 생각되던 일본이 가깝게 느껴지게 되었고, 이렇게 나의 일본생활은 시작되었다.
일본에 오기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일본에 유학하려면 학교를 잘 선택해야 한다구 충고하며, 여러 학교를 추천해 주었다. 그중에서 특히 내 마음에 들었던 학교가 바로 외어비지니스전문학교였다. 학교의 위치도 동경 부근에 있어서 학비나 생활비도 절약할 수 있으며, 선배들과의 연락과 친선 유지에도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일본어 학교는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나뉘어진다. 보통 6개월이 지나야 중급반으로 올라가지만 3개월에 특별진급하는 경우도 있다.
중급반부터는 일본의 단기대학이나 4년제 대학을 목표로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보다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그런 정규학교에 진학하려면 일본어뿐만 아니라 영어, 수학 등의 과목도 대비해야 하는데, 이 학교에서는 중급반부터 선택과목이라 하여 일본어 1, 2, 수학, 영어 1, 2 컴퓨터 비지니스 회화 등의 수업시간을 편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물론 매년 실시되는 일본어 능력시험 대비반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학과 공부뿐만 아니라 현장실습과 문화체험을 통한 현장학습 경험도 중요시하고 있다.
현(縣)내의 마츠리(축제)행사 견학이나 홈 스테이, 일본 국내 여행등을 통해 체험으로 일본을 보다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11월 나는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가와사키시(川崎市) 국제교류센터에서 주최하는 '유학생 일본어 웅변대회'에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받았다.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정말이지 값진 좋은 경험이었다.
이국에서의 유학생활은 외롭다.
얼마나 오래 일본에서 머물게 될지는 모르지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공부하련다.
모국의 숙부와 여러 친구들, 공항에서의 콜라 한 병,
그리고 외어비지니스전문학교라는 배움의 터, 모두 나를 지탱해주고 격려해주며 밝은 미래를 기약케 하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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